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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죽문학

단편 | 돌죽문학) 무예와 칼날의 이름으로-下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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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글쓰는유동 작성일19-07-08 15:14 조회3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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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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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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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걸 먹게."

메시아가 고기 한 점을 건넸다. 유분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아 아마도 오우거 고기인 듯 했다. 수련하는 자는 말없이 그것을 건네받았다. 그는 마블링이라 하면 마블링이고, 비계라 하면 비계일 법한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억세기 그지없는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위대하신 베오그 님께, 오늘도 일용한 양식을 허하신 데 감사드리며..."

다른 오크들은 저마다 베오그의 기도문을 읊조리며, 메시아가 건네는 고기를 공손히 건네받았다. 아무런 말 없이, 기도문도 읊조리지 않고 그것을 받는 건 오직 수련하는 자의 일행들 일곱뿐이었다. 메시아는 오크들이 허기를 달래려 허겁지겁 고기를 뜯기 시작한 것을 보다가, 보존식 하나를 품에서 꺼내들고선 수련하는 자의 곁에 앉았다.

"어때, 먹을만 한가?"

수련하는 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메시아는 아랑곳않고 보존식의 종이 포장을 찢고선, 수련하는 자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읊조렸다.

"보존식의 신, 레토르트의 요리사 페다스 마다쉬께 경배를."

수련하는 자는 흠칫 놀라며 고기를 씹는 것을 멈추었다. 메시아는 껄껄 웃으며 보존식의 건포도를 한 움큼 입에 털어넣었다.

"당신..."
"그래, 그래. 위대하신 베오그 님의 메시아지."

수련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일행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고, 그 자신은 오크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었다. 자신과 메시아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둘뿐이었다.

"당신, 도대체 뭣하는 작자인가?"

이 오크는 대체 뭣하는 작자이기에 자신이 섬기는 신을 이토록 당당히 모욕하는가. 대체 뭣하는 작자이기에 마법사와 사제들은 모두 사지로 내몰고선 전쟁군주들만을 남겨두었는가. 대체 뭣하는 작자이기에 이곳 던전에 내려왔는가. 대체 뭣하는 작자이기에 7대 1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그로써는 처음 보는 거미굴의 방직꾼을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순식간에 제압하고, 해안의 머포크 군단을 상대로 굽이진 통로 하나만으로 전부 제압할 수 있었는가. 메시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무얼 물어보고 싶은겐가? 자넨 내가 특별히 아끼는 전쟁군주이니, 뭐든 대답해주겠네."

메시아가 보존식의 육포를 씹으며 말했다. 특별히 아낀다라. 수련하는 자는 오크 광산에서의 전투를 떠올렸다. 태세를 재정비한 메시아는 다시 달려든 7명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고, 매섭게 몰아치는 미스릴 도끼로 모두를 제압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무력화된 동료들 사이로 내지른 회심의 일격은, 수련하는 자 본인의 목이 어깨로부터 날아가는 결말로 끝났다. 수련하는 자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베오그에게 죽음과 부활로서 맹약이 맺어진 다음이었다. 수련하는 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당신의 목적."
"아, 목적이라 함은..."

메시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물창고의 육중한 강철 천장이 그 위에 쌓여있을 던전의 저층부를 떠받치고 있었다.

"왜 이곳에서 싸우냐, 라는 소리겠지?"

수련하는 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자넨 조트의 오브가 진짜로 있다고 생각하나?"

메시아는 자세를 고쳐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많은 이들이 이곳 던전에 내려온다네. 전사들, 마법사들, 사제들...다들 각자 저마다의 목적이 있을테지만, 결국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게 하는 데엔 오브가 있다네. 오브가 있는 곳에 강자들이 향하고, 자네들이 강자들을 찾아 이곳에 내려온 것처럼 말이야."

수련하는 자와 그의 일행-찌르는 자, 부수는 자, 베어넘기는 자, 되갚는 자, 꿰뚫는 자, 그리고 내려치는 자-는 모두 무도를 위해 이곳에 내려왔다. 그들의 고향인 머나먼 동방의 이국에서 추구하는 무도, 즉 심신의 수련을 통한 완성을 위해서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강자와 겨루어가는 삶을 위해선, 던전에서 구르는 일만큼 적절한 일이 없었다.

"나는 조트의 오브가 이곳, 우리 발 아래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한다네. 숱한 광인들과 유령들이 우리를 현혹하지. 오브라는 건 없다고. 많은 이들이 여정을 포기하지. 힘에 겨워서건, 질려서건 말일세. 그러나..."

메시아가 한 손을 펼쳐보이자, 자그마한 도자기 파편 비슷한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거미줄로 뒤덮힌 룬과 따개비로 뒤덮힌 룬이었다. 메시아는 비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느껴지나? 여기선 우리가 감히 써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이 흘러나오고 있지. 신조차도 여기에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깃들어 있는지 알 수 없을걸세. 그렇다면 오브는 어떻겠나?"

메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치켜들며 말했다.

"오브...오브만 찾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네. 상상해보게나. 무슨 일이든지, 그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네..."
"그러다가 찾아낸 게 결국 소금간 맞추는 돌덩이는 아닐련지 걱정이군."

수련하는 자가 한 마디 툭 던진 말에, 메시아는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다시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 뭐, 그것도 그것대로 멋진 일 아닌가."

메시아가 팔을 내리자 그의 주변을 떠다니던 룬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메시아는 다시금 보물창고를 둘러보며, 피묻은 강철 천장과 형체를 알 수 없을만큼 해체된 오우거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어찌되었건 난 오브를 얻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걸세. 무기도, 자네들도, 그리고 신앙조차도 오브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가차없이 집어들걸세."
"언제라도 가차없이 내버릴거란 소리로 들리는군."

메시아는 비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보존식의 포장지를 구겨 집어던졌다.

"페다스 마다쉬 만세. 확실히 보존식이 맛있군."

수련하는 자 역시 끼니를 마치고 손을 털며 일어났다. 메시아는 방패와 도끼를 집어들며, 수련하는 자를 응시했다.

"자네에겐 확실히 혜안이 있어.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이 도끼보다도 강력한 도끼를 찾아낸다면, 난 이 도끼를 버릴걸세."

메시아는 시선을 돌려 그의 오크 추종자들을 바라보았다. 수련하는 자의 일행인 시큰둥안 표정의 오크들을 빼면, 나머지 오크들은 메시아에 대한 존경과 오크로서의 자부심, 베오그를 향해 치솟는 열정으로 잔뜩 고양되어 있었다.

"저들은 참으로 안타깝고...우둔한 녀석들이지. 아직까진 써먹을만한 전사들이지만. 베오그 님의 은총이 저들과 함께하길."


메시아가 보물창고의 간수들과 싸우러 내려간 사이, 오크들은 윗층에서 머무르며 메시아의 소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리하게 벼려낸 월아산의 날을 다듬으며, 내려치는 자는 베어넘기는 자에게 물었다.

"메시아의 병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베어넘기는 자는 날카로운 날이 번뜩이는 도끼를 허공에 휘두르며 대답했다.

"그는 패도를 걷는 자입니다."
"패도라..."
"예. 군벌놈들 중에서도 저런 작자가 하나 있었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찮고 이용하는 자. 저 작자가 병사를 부리는 모습은 결코 동료를 부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베어넘기는 자는 바닥을 향해 도끼를 내려꽂았다.

"언제든지 연을 끊고 내던질 수 있는, 장기말을 부리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도 아니고 지극히 유용한 방법이기에 무서울 따름이지요."
"과연. 자네도 무서운 게로군."

내려치는 자가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메시아의 도끼날에 한 차례 잘려나간 뒤로는 도통 자랄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나도 저놈이 무서우이. 저놈의 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려치는 자는 메시아의 추종자들이 임시로 만든 동료의 묘에 무릎꿇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우리들을 아무런 고뇌 없이 도구처럼 써먹어버릇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서우이. 인륜마저 저버리고선 그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를 되풀이하는 셈 아니겠나."

그렇게 내려치는 자가 한탄하던 찰나, 베오그의 빛이 그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메시아가 그의 추종자들을 부르는 빛이었다. 내려치는 자는 월아산을 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은 또 무엇을 위한 싸움이련가.


전쟁군주들의 바르디셰가 일제히 간수장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간수장은 투구 너머로 피를 토하며 최후의 발악으로 대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투구를 꿰뚫은 트리슐라의 부드러운 빛과 함께 축 늘어졌다. 꿰뚫는 자는 신속히 트리슐라를 빼내어, 이번엔 2시 방향의 강철인장 소환사의 목을 노렸다. 이미 한 차례 간수들을 불러내었으나 순식간에 전멸해버린 탓인지, 소환사의 강철 면갑으로부터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오래잖아 트리슐라의 부드러운 빛과 함께 소환사도 침묵하게 되었다.

"다들 잘 싸웠다. 전사자가 나오지 않는 전투가 계속되는군."

또 한 차례 전투가 끝나자, 메시아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전쟁군주들은 무기를 치켜들며 환호했다. 꿰뚫는 자는 여전히 베오그의 신도들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생각하며 눈앞의 광신도들을 바라보았다. 되갚는 자 역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며 메시아의 추종자들을 바라보다가, 꿰뚫는 자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생각해보니까, 우리도 저 양반 추종자잖아."
"뭐, 그렇지.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무기도 대부분 베오그가 하사했거나, 저 양반이 건네준 무긴데 뭘."

꿰뚫는 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트리슐라의 빛나는 날을 바라보았다. 메시아건 베오그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믿음직스러운 창 한 자루만큼은 길고 긴 성전, 순례, 여정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거라도 없으면 이 지루한 시간을 견딜 재간이 없었을걸?"

그저 아래로 내려가기 위한, 룬을 찾아내기 위한 기나긴 싸움. 싸움 그 자체는 무도의 가르침대로 스스로를 연마하기에 좋은 수련이었으나, 다만 꿰뚫는 자는 그것이 그녀와 동료들의 이름이 아닌 메시아의 이름으로, 베오그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불편했다. 되갚는 자 역시 삼중검의 날에 묻은 피를 정성스레 닦으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한편, 7명의 오크들 중 자신의 무기에 가장 만족하는 건 바로 부수는 자였다. 메시아의 군세에 가담한 후에도 여러 차례 반항하던 그에게, 메시아는 오래 숙성된 버섯주 한 병과 어둠망치를 건넸다. 어마어마한 무게, 그리고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어둠망치에, 부수는 자는 반항을 관두고 거나하게 취한 채 전투에 적극 참여했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키야~ 베오그가 확실히! 전투를 팍팍 도와줘!"

베오그의 축복을 받아 부상을 회복한 부수는 자가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베오그의 축복은 취기를 회복시키지는 않았다. 부수는 자는 여전히 취한 채 외쳤다.

"거! 메시아 양반! 다음 싸움은 어디요!"

부수는 자가 보란듯이 어둠망치를 움켜쥐며 외치자, 메시아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곧 아주 큰 싸움을 마주칠거다. 부숴버려야 할 놈들이 아주 한가득인 싸움이다."

메시아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보물창고의 마치막 층까지 앞으로 셋에서 두 개의 층이 남았다. 부수는 자는 버섯주를 벌컥이며 들이키더니, 취기오른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해골바가지들 있는 곳으로는 안가는게요? 부숴버릴 골통이 한가득이겠구만!"

해골과 양초로 장식된, 납골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메시아는 잠시 납골당으로의 계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다시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알겠다. 약속하지. 이곳의 마지막 층까지 돌파한 다음, 납골당으로 향한다."

부수는 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메시아 역시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메시아가 앞으로도 일이 잘 풀리겠군, 하며 중얼거리던 것을 들은 오크는 없었다.


"큰형님! 지금임다!"

여느 때처럼, 찌르는 자가 빈틈을 만들자 수련하는 자는 단숨에 파고들어 정권을 내질렀다. 그의 강철과도 같은 주먹이 마지막 강철 용을 쓰러뜨리자, 강철 용이 가로막고 있던 복도 너머로 은빛으로 번득이는 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오크들의 환호와 박수와 함께, 찌르는 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레이피어에 묻은 용의 피를 닦아냈다. 수련하는 자는, 말없이 용의 시체 앞에 걸터앉아 주먹에 붙은 금속 비늘 따위를 털어냈다.

찌르는 자가 한창 오크들의 헝가래를 받던 중, 메시아는 수련하는 자에게로 다가왔다. 그 역시 용과 거인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힘든 싸움이었어. 그렇지 않았나?"
"확실히."

수련하는 자가 타이탄의 번개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공격에 전기 저항을 갖추지 못한 오크들은 큰 부상을 입었고, 몇몇은 그 자리에서 전기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메시아와 몇몇 운좋은 오크들만이 전기에 저항을 주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아무튼..."

메시아는 수련하는 자를 뒤로하고, 은빛으로 빛나는 룬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갑옷과 도끼, 금화 따위가 부딪히며 쩔그럭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이걸로 3룬...순조롭군."

메시아는 미소지으며 은빛 룬을 집어들었다. 룬에서 흘러나오는 은빛 광채가 잠시 메시아를 감싸다 사라졌다. 메시아는 룬을 집어든 손을 주먹쥐며 더욱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다음은 어디로 내려가나?"

수련하는 자가 일어나 물었다. 그 역시 두 손을 주먹쥔 채였다. 메시아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엔 내려가지 않아. 올라갈걸세."

메시아는 즐거운 표정으로 룬을 집어든 손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수련하는 자는 재차 물었다.

"어디로?"



"왜 메시아님께서 만신전으로 가시자는거지?"

전쟁군주들이 수근거렸다.

"베오그 님께 경배를 올리시기 위해서 아닐까? 세 번째 룬까지 모으면 조트의 영지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럼 광산으로 가시면 될텐데. 그 쪽이 더 가깝잖아."
"글쎄...그래도 메시아 님이 가시자는건데. 뭔가 목적이 있으시겠지."

전쟁군주들이 술렁이며 계단을 오르던 사이, 7명의 오크들은 아무런 말 없이 계단을 올랐다. 메시아가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적들을 각개격파한 계단. 전쟁군주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일시에 올라온 적을 처치한 계단. 부상자들이 상처가 아물 때까지 휴식을 취하던 계단...한 칸 한 칸에 그들의 여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또한 핏자국도, 마찬가지로 스며들어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만신전에 도착했을 때, 메시아는 기쁜 표정으로 추종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화염 램프가 들려 있었다.

"제군들, 여기까지 잘 와줬다."

전쟁군주들이 환호했다.

"이제 제군들은 위대하신 베오그 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될 것이다. 엄숙함을 지키기 위해, 한 번에 한 명씩 나를 따라 내려오도록."

메시아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전쟁군주 하나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자, 마지막 추종자 하나와 7명의 오크들만이 입구 앞에 남아있었다. 맑은 웃음이 완연한 표정의 마지막 추종자가 메시아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자, 수련하는 자는 갑작스레 굴착의 마법봉을 휘둘러 가장 가까운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를 뚫었다.

"큰형님? 무슨 일이에요?"

되갚는 자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시간이 없다. 다들 가능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춰!"

되갚는 자는 잠시 당황해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얘기해둔 건 준비해뒀나?"
"암요. 자, 다들 하나씩 가져가십쇼."

찌르는 자가 안주머니에서 7개의 반지를 꺼냈다.

"이게 다 뭡니까?"

부수는 자가 두툼한 손가락에 겨우 반지를 끼우며 말했다.

"메시아가 쓸모 없다고 짐승굴에 모아뒀던 반지들임다."

찌르는 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화염 저항...그렇군."

내려치는 자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나만 있어도 불기둥 속에서 버틸 정도는 될겁니다."

수련하는 자가 양손의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여러 마법이 깃든 고대의 유물들로 대부분의 위협에 저항을 갖춘 메시아는, 평범한 반지나 그다지 유용하지 못한 반지들은 모두 짐승굴의 한 켠에 버려두었다. 수련하는 자는 자신이 낀 반지로부터 머리가 둔해지고, 주변의 추위가 훨씬 싸늘하게 다가오며, 주먹마저 무뎌지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화염으로부터 아주 두터운 보호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7명의 오크가 모두 반지를 끼고 도망칠 채비를 마쳤을 때, 메시아는 텅 빈 화염 램프를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쩔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안, 7명의 오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메시아는 여전히 베오그의 신성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자네들도 함께 가지. 자네들이 신앙심 깊은 전사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만..."

수련하는 자는 메시아의 미스릴 도끼날을 바라보았다. 한 치의 핏자국 없이 깨끗했다. 끝까지 빈틈없는 작자로군, 하며 수련하는 자는 생각했다.

"음...그래. 자네부터 내려오게. 함께 가세나."

베오그의 권능으로 맺어진 맹약이 메시아의 목소리로부터 흘러나와 수련하는 자를 옭아맸다. 모든 추종자들에게, 심지어 수련하는 자에겐 죽음과 부활로써 맺어진 맹약. 메시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케 하는 맹약이엇다. 수련하는 자는 메시아의 말대로 메시아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만신전으로부터 은은한, 따뜻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메시아와 수련하는 자는 계단 한 칸 한 칸을 천천히 내려갔다. 묵직한 긴장감이 둘 사이를 감쌌다. 둘은 굽이진 골목 앞에서 멈추었다.

"자넨 내 행동을 이해해줄거라 믿네."

메시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골목 너머로부터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메시아는 먼저 골목 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련하는 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메시아는, 수련하는 자와 자리를 바꾸었다. 그것은 수련하는 자의 의지가 아닌, 메시아의 의지로 행해진 일이었다.

베오그의 맹약이 명하는 바에 따라, 수련하는 자는 불기둥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살이 타오르는 고통이 온몸을 감쌌다. 수련하는 자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불기둥 속에서 타들어가는 수련하는 자를 등진 채, 메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있었다. 그렇게 수련하는 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비명이 끝나자, 메시아는 아무런 말 없이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메시아가 계단을 올라간 것을 확인한 수련하는 자는, 재빨리 일어나 불기둥으로 가득한 복도를 뛰쳐나왔다. 한때 메시아의 추종자였을 시체, 시커멓게 눌러붙은 검댕들을 지나 불기둥을 빠져나온 수련하는 자는 불씨를 털어내며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자신의 갑주를 불기둥 속으로 집어던진 후, 수련하는 자는 아쉔자리의 산산히 부서진 제단이 모셔진 방으로 들어갔다.


아쉔자리의 방에서, 수련하는 자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반지를 빼냈다. 머리가 다시 명료해지고, 주변의 한기가 가시며 주먹이 다시 굳세지는 느낌과 함께 세 겹의 화염 저항도 사라졌다. 수련하는 자는 자신의 계획을 되새겨보았다. 메시아는 이미 마법사와 사제들, 불필요한 무기를 든 기사들을 처리했던 방법을 다시 쓸 터였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화염 저항을 갖춘 메시아가 먼저 불기둥 속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추종자와 자리를 바꾼다. 베오그의 징벌도 피하면서 추종자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메시아가 베오그의 권능으로 추종자들을 한꺼번에 불러내어 불기둥 속에 넣을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정말 난감했을테지만, 수련하는 자는 메시아의 교활함과 잔인함을 믿어보기로 했었다. 추종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홀로 불타죽는 것. 메시아처럼 교활하고 잔인한 인물이라면, 뒤탈이 없도록 가장 확실하게 하나하나 죽이는 편을 택했을 터였다. 다행스럽게도 수련하는 자의 예상은 여기서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추종자들이 모두 죽은 다음엔, 메시아는 즉시 베오그를 버리고 다른 신앙을 택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는 옛 추종자들을 불러모을 권능을 잃게 되므로, 설령 수련하는 자의 일행이 살아있다는 걸 눈치채도 찾아낼 방법이 없게 된다. 그가 끝까지 베오그를 믿으면? 조트의 영역까진 어찌어찌 뚫어본다손 쳐도, 납골당, 무덤, 그리고 지옥과 판데모니엄까지 베오그를 믿는다? 메시아는 그럴 작자가 아니었다. 그의 탐욕은 빠르고 철저하게, 열다섯의 모든 룬을 모은 데 온 힘을 쏟을 터였다.

오래잖아 내려치는 자가 아쉔자리의 방으로 기어들어왔다. 그의 반지에는 세 겹이 아닌 한 겹의 저항만이 깃들어 있었기에, 그는 수염이 반쯤 타들어간 채였다.

"망할 녀석 같으니...이 수염을 기르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건만."

내려치는 자가 갑주를 벗고 빈손인 채로 수련하는 자 옆에 주저앚으며 말했다.

"저 녀석이 우리가 버려둔 걸 도로 집어가진 않겠지?"

내려치는 자가 월아산이 없는 탓에 허전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물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저 작자에겐 가방만 차지하는 괜한 짐일테니까요. 저 작자 손에 들린 도끼보다 좋은 무기도, 저 작자가 몸에 걸친 갑옷보다 좋은 갑옷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지랄맞게 철저한 놈이군..."

내려치는 자가 수염의 그을린 자국을 매만지며 말했다.

마침내 마지막 차례인 찌르는 자만을 남겨두자, 아쉔자리의 방에 모인 6명의 오크들은 숨죽인 채 메시아의 동태를 지켜보았다. 찌르는 자가 비명지르던 시늉을 멈추고 쓰러지자, 메시아는 잠시 기다렸다가 불기둥을 헤치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메시아가 어느 신의 제단이 모셔진 방으로 들어간 사이, 찌르는 자는 조용히 그리고 재빠르게 레이피어를 버려두고 아쉔자리의 방에 들어왔다.

그렇게 모두 모인 7명의 오크들은 숨죽여 기다렸다. 메시아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던가? 메시아가 이번엔 무슨 신을 섬길 것인가?

이윽고 메시아가 방에서 나와, 불기둥이 사그라둔 복도를 넘어 계단을 올라갔을 때, 7명의 오크들은 한동안 기다렸다가 조용히 방을 나왔다. 동료들이 죽은 척을 하기 위해 버려둔 장비를 찾으러 복도로 간 사이, 수련하는 자는 메시아가 들어갔던 방의 문을 열었다.

황금빛의 찬란한 광채가 수련하는 자 앞에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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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은 결(結)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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